시집,홍차,라디오키드 by 봄날

# 교수님과 점심식사를 했다. 참 이런 자리는 좋으면서도 어렵다.
좋아해 주시고 챙겨 주시는 게 감사한데 내가 거기에 못 미치는 것 같아서 부끄러운 마음도 들고.
말도 좀 조리있게 잘 할 걸, 많이 할 걸, 그런 후회가 든다. 막 더 적극적으로 나를 어필했어야 했나?
같이 식사한 친구와 괜히 비교되기도 하고 바보같은 말을 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항상 말 하는 건 어렵다.
교수님께 기형도 시집과 홍차를 선물로 받았다. 이미 한 권 있지만 시집을 선물받는다는 건 기분 좋은 일이다.
나도 시집을 선물했을 때 기쁘게 받아줄 누군가가 있었으면 좋겠다.
홍차는 사실 처음으로 우려서 마셔봤는데 향과 색으로 마시는 느낌이다.
몸도 따뜻해 지는 거 같아서..괜히 하룻밤새 티백을 두 개나 꺼냈다. 덕분에 밤은 꼴딱 새고.


# 요새 라디오를 많이 듣는다.
기숙사에 있을때 아무 소리도 안나면 너무 외로워서 소형 라디오를 하나 샀는데,그동안 뭐가 문제인지 작동이 안 되다가 며칠 전에서야 제대로 소리가 나온다.
고등학교 때 까지 라디오를 정말 많이 들었었는데 대학에 오고 기숙사에 살면서 라디오를 제대로 못 들었었다.

제일 최초의 라디오의 기억은 김정화가 진행하던 음악 프로그램이었는데..
이름이 뮤직포유 였었나? 엠비씨에서 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때가 초등학생 때였지 아마. 편지지에 사연도 썼었는데 부치지 못했던 기억도 난다. 내용이 뭐 한자 시험보는데 응원해 주세요, 이런거였던 거 같다. 디게 유치하다.
그때부터 라디오를 계속 들었던 것 같다.
가끔 배철수의 음악캠프도 들었고, 주말엔 이문세 아저씨가 진행하던 프로그램을 참 좋아했다. 주말 오전의 그 느낌이 너무 좋아서.
골든디스크는 뭔가 살짝 나른해지면서 옛날 팝송을 많이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제일 좋아했던 라디오 프로그램은 이소라의 음악도시, 성시경의 푸른밤.
지금은 다 없어진 프로그램이지만.. 이소라의 음도가 끝났을 땐 너무 아쉬운 마음에 카페도 가입했었다.
뭐 음도를 사랑하는, 추억했던 사람들의 모임 비스무리한거였다. 소라언니가 그 글을 볼 리는 없지만 열심히도 글을 써댔었다. 지금 생각하면 웃기기도 한데 나름 아련한 추억이다.

성시경의 푸른밤은 "잘자요" 이 한마디 들으려고 새벽 두 시까지 버텼던 기억이.. '사랑을 말하다'의 배경 음악이 너무 좋아서 기다렸던 생각이 난다. 적절히 웃기기도 하고 감성적이기도 하고 가볍기도 하고 야한 얘기도 하고 그래서 좋아했다. 이게 바로 심야방송의 묘미지.

최근엔 유희열의 라디오천국을 재밌게 들었는데 아쉽게도 또 없어졌다.
음도-푸른밤-라천 이렇게 이어지는 계보라고 생각했었는데 프로그램이 없어져서 너무 아쉽다.
아직 저 세 개를 뛰어넘는 라디오는 못 들어봤다. 그 라디오의 느낌들이 참 좋았는데..
성시경이 지금 음악도시를 받아서 하고 있지만 예전의그 느낌은 영 아닌 것 같다. 시간대의 문제인가?
밤 열두시에서 새벽 두 시 사이에 들을만한 마땅한 라디오가 없는 것 같다.
그 시간대를 넘어서 새벽에 하는 영화음악도 좋은데 그건 시간이 너무 늦어서 자주 못 듣겠다.

확실히 라디오는 텔레비전과는 다른 라디오만의 맛이 있어서 좋다. 좀 더 가까운 느낌이고 친밀한 느낌이고 왠지 그냥 디제이랑 나랑 아는 사이인 것 같고.. 특히 심야시간대에 하는 프로그램일 수록 더 그런 듯 하다. 보이지 않으니까 상상하면서 듣게 된다. 이게 라디오의 미덕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난 개인적으로 보이는 라디오를 싫어한다. 거기까지 카메라가 들어가야 하나 싶다.

이렇게 쓰고 보니까 나 무슨 라디오 예찬론자 같애... 내 어린시절의 절반이 넘는 기억이 다 라디오여서 그런가보다.
이 세상에서 종이책과 라디오는 영원히 안 사라졌으면 좋겠다.



덧글

  • 김정수 2011/12/17 20:15 #

    눈으로 화려하게 치장한 것들에 이젠 싫증이 나는 거겠지요.
    아무리 e-book이 나와도 종이로 읽는 가독력에 비하지 못할거예요^^
  • 봄날 2011/12/17 20:44 #

    동감해요.종이 한장한장 넘겨가며 읽는 손맛을 e-book이 따라올 순 없는 거 같아요. 제 생각엔 종이책이 훨씬 더 편한 거 같은데..^^
  • 도도한 생활 2011/12/18 20:20 #

    아날로그적 감성을 간직한 분이시네요 ^^
    그 감수성을 영원히 지켜가셨으면 좋겠어요
  • 봄날 2011/12/21 17:06 #

    아날로그..좋지요^^
  • 청년 2011/12/21 05:23 #

    저.. 라천민입니다!!!
    불나방들! 크하!!

    봄날님은 저와 궤를 같이 하는 게 꽤 많은 듯 하네요ㅡ ㅋㅋ
  • 봄날 2011/12/21 17:04 #

    어머 라천듣는 남자가 여기에..ㅋㅋㅋ
    갑자기 동지애가 불타오르는 이기분은 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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